"이 친구에게 심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영혼은 있어요. 라이딩을 할 때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할리데이비슨 본사에서 만난 HOG 총괄담당자 브루스 모타씨는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손으로 어루만져가며 낯간지러운 애정표현을 쏟아냈다.

HOG는 '할리 오너스 그룹'의 약칭.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우리 표현으로 하자면 '할사모' 정도가 될 것이고,모타씨는 본사의 할사모 지원 총책인 셈이다.

"할리는 믿을 수 있는 친구입니다.

내가 그를 돌봐주면,그도 나를 돌봐주는 관계죠.할리에 올라타 일상에서 빠져나간 기분으로 편안히 앉아 있다 보면 9시간,10시간도 금방 갑니다.

물론 엉덩이는 조금 아프지만."

모타씨는 얼마 전까지 미 해군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는 엔지니어였다.

1975년 처음으로 할리의 매력에 빠진 뒤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HOG 활동으로 보내던 그는 4년 전 본사에서 본격적으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이지 않고 수락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전부 반대했어요.

연금 수입도 사라지고 20년 넘게 쌓아온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도 날아가니까요.

하지만 '내 영혼을 따라가기 위해' 이곳에서 할리를 위해 일하기로 결정했죠."

모타씨는 할리데이비슨의 감성과 문화에 매료된 '마니아 고객'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가 수장 격을 맡고 있는 HOG에는 세계 각국 130만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스스로 회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연 45달러를 내는 HOG 회원들의 열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연간 150회가량 열리는 랠리(그룹 라이딩)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참가 후에는 특별히 편집한 동영상을 사들인다.

사회지도층의 50대 남성이 할리데이비슨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가죽재킷을 입고 10대 소녀처럼 스티커와 배지를 모으는 모습을 보면 이들에게 할리데이비슨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할 정도다.

5년마다 열리는 정기 대규모 랠리에는 최대 5만명에 이르는 HOG 회원이 주황색과 검정색으로 치장하고 밀워키에 있는 할리데이비슨 본사로 모여드는 장관을 연출한다.

일부 회원들은 비행기에 할리를 싣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할리데이비슨의 매출은 2006년 기준 총 58억달러(약 5조4700억원),순익은 10억4300만달러(약 9840억원)에 육박한다.

10년간 평균 순익 증가률은 17.4%에 이른다.

20년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이 회사는 2000년 일본 혼다와 야마하를 제치고 세계 1위 모터사이클 제조업체 자리에 올랐다.

로드 콥스 할리데이비슨 부사장은 "수많은 모터사이클 기업이 경쟁과 불황 등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갔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이는 할리데이비슨이 다른 모터사이클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할리의 강렬한 엔진 소리다.

마니아들은 이 소리를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라고 표현한다.

"두둠! 두둠! 두두둠… 두둠! 두둠!"하고 이어지는 리듬감 넘치는 소리는 V트윈 엔진(실린더가 2개인 V자형 엔진)이라는 독특한 엔진 형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1909년 처음 V트윈 엔진이 만들어진 이후 99년간 할리데이비슨은 단 한 번도 이 형태를 바꾼 적이 없다.

기술적으로는 특별한 장점이 없지만 심장 박동처럼 들리는 이 소리가 할리를 '살아 있는 존재'로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할리데이비슨이 처음부터 고객들의 지지를 얻었던 것은 아니다.

1,2차 세계대전 무렵 군수용품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 회사는 전후 영국과 일본의 모터사이클 제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1969년 도산 위기에 처한 할리데이비슨을 인수한 미국 레저업체 AMF는 소형 모터사이클 개발 등에 주력하며 주 고객층을 등한시했고 한때 90%에 이르렀던 이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25%까지 감소했다.

구원투수는 내부에서 등장했다.

1981년 AMF사가 할리의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여겼던 회사 임원진 13명은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마련해 회사를 사들였고 2년 후 고객 커뮤니티인 HOG를 결성했다.

임원진이 스스로 몸에 문신을 새기고 가죽점퍼를 걸치고 브랜드에 담긴 '자유'와 '저항정신'을 알리며 랠리에 나섰다.

'독수리는 홀로 비상한다' 등의 가슴을 뛰게 하는 프레이즈와 남성다운 이미지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첫해 HOG의 멤버는 3000명에 불과했지만 2년 후에는 6만3000명으로 늘었다.

적극적인 문화 코드 전파로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2000년 이후에는 아시아 시장의 성장과 여성 라이더의 증가에 맞춰 코드를 살짝 바꾸는 '센스'도 발휘했다.

콥스 부사장은 "거칠고 반항적인 이미지와 남성 위주의 제품만으로는 시장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다"며 "V트윈 엔진은 그대로 유지하되 다양한 사람들이 할리를 즐길 수 있도록 본체 높이를 낮추고 조작법을 간단하게 바꾸는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이던 '형제애'라는 표현도 '형제.자매애'로 바뀌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은 '나를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다양한 고객이 우리를 찾는다면,그들이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우리 몫이죠."

(콥스 부사장)밀워키(미국)=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