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정책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 누적으로 붕괴 직전까지 몰려있는 지방 건설시장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집값·전셋값 등과 관련해서는 이미 발표한 정책들을 재탕·삼탕으로 쏟아내는 등 헛발질이 잇따르고 있다.

6억원이 넘는 주택에 대해선 입주 여부까지 신고토록 하는 등 무리수를 동원하는 바람에 시장에 혼선만 주고 있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재탕 일색인 '전세대란'대책

정부가 13일 발표한 전세시장 안정대책은 재탕 정책의 단적인 예다.

이날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는 영세민·근로자 전세자금 지원액을 2조원으로 종전보다 4000억원 늘리고 관계 부처 합동으로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시장 현장 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또 중·장기적으로 임대주택 등의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대책은 지난 6일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전세시장 동향과 전망'자료와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추가된 것이라고는 '시장 합동점검 방침'이 거의 유일하다.

조사결과 필요하다면 내주초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는 방침이지만,이제까지의 행보를 보면 신뢰성이 떨어진다.

실제 전세자금 지원 확대는 이미 지난달부터 '국민주택기금 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시행 중인 대책이다.

심지어 지난해 11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전세자금 지원 금리 인하방안까지 이번 대책에 포함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현실 인식이 잘못돼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최근의 전셋값 상승은 시장 침체로 주택 구입을 늦추고 전세로 계속 사는 세입자가 늘면서 매물이 되레 줄어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라면서 "그런데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부과,2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으로 매물이 증가하면 무주택자의 주택 구매가 늘어 전세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대주택 확대책은 세번째

이날 나온 임대주택 확대방안도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다.

건교부는 11일부터 △최저 주거 기준 미달 가구가 2000년 334만가구에서 지난해 말 255만가구로 줄었으며 △2012년까지 도심 '맞춤형' 임대주택을 당초 7만가구에서 9만2000가구로 늘리고 △공공택지 내 중·소형(전용면적 25.7평 이하) 10년 임대주택은 주공 등이 전담해 공급토록 한다는 정책자료를 매일 한 건씩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책은 이미 당·정·청이 지난달 31일 8·31대책 1주년을 맞아 내놓은 '서민·중산층 주거복지 증진 방안'을 통해 모두 발표한 내용의 '복사판'에 불과하다.

한 달여 동안 똑같은 정책을 세 번이나 내놓은 셈이다.

2012년까지 임대주택 116만가구를 짓기 위해 필요한 88조원의 재원을 확보하는 것 등의 보완대책은 어디에도 없다.


○지방 건설시장은 '무대책'

반면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는 지방 건설시장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사실상 '무(無)대책'이다.

이미 부산 대구 울산 김해 충주 등 지방 주택시장은 세제 강화로 인한 수요 위축과 공급 과잉에다 3·30대책에 따른 중도금 대출 규제 강화마저 겹쳐 미분양 아파트 대물거래까지 나오는 등 위기 상황이다.

실제 지방 미분양 아파트는 5만가구를 넘어서 7년 만의 최대치다.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이 건교부로부터 제출받은 '미착공·공사 중단 아파트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지난 6월 말까지 전국 247곳의 8만9230가구가 공사가 중단되거나 착공이 연기된 것으로 집계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사실상 '나 몰라라'는 자세다.

지난달 지방 건설사에 대한 지역의무 공동도급액을 상향 조정키로 했을 뿐 전문가나 업계가 제시하고 있는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 선별 해제,금융 규제 완화 등에 대해서는 수용 불가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방 주택시장은 충청권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10·29대책 이전 수준의 집값에 머물러 있어 집값 불안 재연 우려 때문에 지방시장 규제를 풀 수 없다는 정부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강황식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