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국가나 사회의 도움받은 적 있나요?"
"괴물 나타났다는 스코틀랜드 네스호 가볼 것"


2000년 '플란다스의 개' 전국 관객 10만 명, 2003년 '살인의 추억' 전국 관객 550만 명, 2006년 '괴물' 1천만 명.
첫 작품은 고작 10만 명이 관람했다.

그러나 평단에서는 독특한 세계관에다 유머가 살아 있고, 리얼리티를 포착하는 감독의 출현에 흥분했다.

3년 후 '살인의 추억'의 등장.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영화계는 '웰메이드 영화'라는 단어를 대중화시켰다.

그리고 또 3년 후 이 젊은 감독은 '괴물'로 한국영화 흥행사에 도전하고 있다.

봉준호(37) 감독은 불과 세 작품만에 꽤 큰 성과를 거뒀다.

작품성과 흥행력을 갖춘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각인'된 것. 영화가 태생부터 가져온 논란, 즉 상업성과 예술성의 양면을 동전처럼 동시에 갖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부터 관객과 평단에 안심을 줬고, '괴물'로 도전 정신을 인정받았다.

전국 관객 1천만 명 돌파를 앞두고 봉 감독의 소감을 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얼마 전 일본에 다녀왔고, 11일 홍콩영화제 참석차 홍콩에 갈 예정이며 곧바로 에든버러 영화제에 참석하러 영국으로 향한다.

'괴물'과 관련해 인터뷰를 200번 정도 한 것 같다.

--다음주 초쯤 1천만 관객을 돌파할 예정이다.실감나나.

▲다음주 초는 아닐 것 같다.

'각설탕' 등 볼 만한 가족영화도 있고. 난 20일께나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일단 소감을 말해달라.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이 정도의 관객 동원은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괴물'에 코미디적인 요소가 있지만 나름대로 어두운 면이 있는 데다 정치적인 접근법도 아주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론 시사회가 끝나고 난 후 평론가나 기자들이 500만 명 정도가 들 것이라고 말했을 때 나 역시 그 정도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제작비가 112억 원으로 500만 명이 들면 제작사는 손해여서) 미리 해외에 많이 팔기를 잘했다고도 생각했다(웃음). 지금 굉장히 어리둥절하다.

--관객이 왜 이처럼 '괴물'에 열광하는 걸까.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나 역시 나름대로 분석해봤다.

그런데 개봉 전에는 A, B, C 등등의 이유 때문에 안된다고 했던 게 흥행이 되고 나자 A, B, C가 흥행코드라고 말한다.

역시 흥행은 결과를 놓고 말하는 것이다.

--스스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나.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접점을 잘 찾는 감독이 돼 있다.

▲상업영화, 예술영화의 구분이 내겐 없다.

다만 내 성격과 취향대로 정직하게 만들려고 한다.

우선 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아무도 안 찍어주니까 내가 찍는 거다.

아마 이 말은 내가 영화감독이기 전에 열렬한 영화 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 같다.

한강에 괴물이 나타난다는 이번 영화의 설정도 마찬가지다.

지금에야 히트작으로 취급되지만 처음에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다들 뜨악해하고, 정신이 나갔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지금 솔직하게 찍어줘서 고맙다는 관객의 반응이 많다.

홈페이지나 관련 게시판 등 인터넷을 통해 관객의 글을 자주 읽는데 3~4번씩 본 관객이 많더라. 정말 고맙다.

관객이 쓴 글 중 굉장히 섬세하고 독창적인 접근으로 영화를 평한 글을 만날 수 있다.

'나중에 인터뷰했을 때 꼭 써먹어야지'라고 생각한다(웃음).

--'괴물'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온다.

가족영화다, 반미영화다, 실패한 운동권 영화다 등등. 그 모든 평을 차치하고 이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서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나.

▲인물 중심으로 생각하면 쉽다.

괴물과 힘겨운 싸움을 하는 가족이 있다.

그런데 괴물보다도 더 무서운 세상이어서 외롭고 서글픈 것이다.

솔직히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여러분들은 국가나 사회에 도움을 받아본 적 있었나요?"
며칠 전 이런 사건이 보도됐다.

젊은 엄마와 어린 딸이 은행 무인점포에 갇혔다.

땡볕더위인 낮시간이어서 그곳에 갇힌 모녀는 탈진하기에 이르렀다.

경찰과 119에 전화했지만 '은행 경비보안업체가 담당해야 할 일'이라고 서로 미루는 데다 보안업체마저 늦게 도착했다.

결국 두 사람을 구한 건 30분 후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이었다.

무인점포 문을 부수고 가족을 구한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괴물'과 똑같은 일이 아직도, 여전히,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이 영화의 시추에이션과 똑같다는 게 참으로 웃기고 서글펐다.

--학교 다닐 때 운동권이었나.

▲운동하는 친구와 선배를 좋아했을 뿐이다.

학회지에 만화를 그리거나, 다른 방식으로 좀 도와줬을 뿐 난 개인적인 성향이라 조직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운동권 학생이지는 않았다.

19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녀 시위하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박해일 씨에게 화염병 던지는 법도 가르쳐 줄 수 있었다.

배우는 배우더라. 한번도 던져본 적이 없는 화염병을 그렇게 잘 던지다니.

--'괴물'의 흥행과 더불어 묻지 않을 수 없는 주제가 있다. 스크린쿼터다.

영화계에선 축소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정작 '괴물'이 620개의 스크린을 독식하며 흥행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제작자인 최용배 청어람 대표나 봉 감독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에 앞장서 온 사람들이라 논란이 불편할 듯하다.


▲나도 나지만, 최용배 대표는 참 억울할 것 같다.

'여섯 개의 시선' 같은 단편 영화 시리즈나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용서받지 못한 자' '양아치 어조' 등 단편영화와 독립영화를 꾸준히 제작, 배급했던 분인데 '괴물' 한 편으로 스크린을 독식하는 제작자가 돼버렸다.

사실 영화가 완성된 이후의 배급 상황은 감독과 무관하기는 하지만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리겠다.

어떻게 이렇게 스크린을 많이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배급사 횡포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름대로는 정당했다.

그러나 이처럼 전체 스크린의 40%를 차지하는 건 한국에만 있는 기현상이다.

최근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서 스크린쿼터와 맞물려 '마이너리티 쿼터'를 주장하고 있다.

'괴물'이 십자가를 지더라도 '괴물'을 계기로 현실적인 대안들이 공론화됐으면 한다.

(그는 인터뷰 후반 내내 스크린쿼터와 관련, "'괴물'이 십자가를 지더라도"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마이너리티 쿼터란.

▲CGV 인디관처럼 상영관이 몇 개 이상되는 멀티플렉스에는 인디관 설치를 법제화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대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상영관 제한이나 프린트 벌수 제한 조치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다.

원래 프린트 벌수를 일정 숫자로 묶어 개봉관 수를 제한하는 제도가 1980년대까지 있었다(이때는 개봉관, 재개봉관 등의 영화관 등급이 있었다). 그런데 할리우드 직배사가 들어오면서 제한을 풀어줬다.

그때는 할리우드 영화가 모든 상영관을 집어삼킬 태세였지 않은가.

그런데 90년대 이후 한국 영화가 발전하고, 관객이 사랑해주니까 스크린쿼터가 축소되고 오히려 한국 영화인들이 상영관 제한, 프린트 벌수 제한 조치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미국 영화 밀어붙이느라고 프린트 제한을 풀어놓고 이제는 한국 영화 잘되니까 제한하자고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다시 봉준호의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가.부담이 심할 텐데.

▲부담감을 떨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직 내 나이 마흔 살이 안됐다.

긴 내 영화 인생에서 지금까지의 작품이 난 초기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히치콕의 대표작은 거의 대부분 환갑이 다 돼서 나왔다.

나 역시 그 나이에 내 대표작을 내놓고 싶다.

아직까지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나만의 방법과 스타일이 관객을 어느 정도 만족시킬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살인의 추억'도 '괴물'도 그 시점에서는 새로운 것이지 않나.

--만약 구체적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어떤 장르를 택하든 그 장르를 망가뜨릴 작정이다(웃음). '살인의 추억'도 범인이 잡히지 않으면서 범죄 영화의 틀을 깼고, '괴물' 역시 백주대낮에, 그것도 영화 초반에 괴물을 한번에 보여줌으로써 괴수영화의 전형을 깼다.

어떤 장르든 그 장르의 전형을 헤치고 싶다.

다만 뮤지컬 장르는 제외다.

춤과 노래는 영 나와 안 맞는다.

--얼마 전 일본에서 봉 감독이 좋아한다는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를 만났는데 어땠나 (기자의 개인적인 질문이기도 했다.기자 역시 '몬스터' '마스터 키튼' '20세기 소년'의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열려한 팬이기 때문).

▲정말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작업 중 부스스한 머리로 왔는데도 멋있었다.

만약 시간만 있었으면 밤새도록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최근 나온 '20세기 소년' 21권에 주인공 겐지의 늙었을 때의 모습을 그려줬다.

일본어를 못해 만화책은 못 보지만 그 그림만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웃음).

--일본에 이어 홍콩, 영국 등 각국의 영화제 초청으로 외국을 많이 나갈 예정이라고 들었다.

▲11일 홍콩에 갔다온 뒤 하루 쉬고 14일 영국 에든버러 영화제에 간다.

영화제에 가면 보고 싶은 영화 마음껏 볼 수 있어 좋다.

특히 에든버러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스코틀랜드 네스호에 꼭 가보고 싶다.

괴물이 산다는 곳 아닌가.

--작품 계획은.

▲'괴물' 촬영하면서도 차기작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었다.

'괴물' 역시 '살인의 추억' 때부터 작업했잖나.

일단 도쿄 프로젝트에 참여할 건데 늦어지고 있다.

세 나라 세 감독이 도쿄를 배경으로 옴니버스 영화를 만드는데 '퐁네프의 연인들'의 레오 카락스 감독과 나, 일본 감독이 참여하기로 했다.

일본 감독이 몸이 좋지 않아 다른 감독으로 교체해야 한다.

'괴물' 개봉 즈음 '어머니'를 주제로 한 영화를 차기작으로 한다고 했는데 아직 모르겠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