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났습니다.

돈이 없습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막 추진하던 1963년,국고가 바닥났다.

이른바 첫 외환위기였다.

'전쟁위험 국가'로 분류돼 외자도입이 불가능하던 때였으니 파산 직전의 '극빈국 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가난한 나라의 CEO로서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수출제일주의와 공업입국의 경제전략에 더욱 매진키로 결심,이듬해 '라인강의 기적'을 배우러 서독으로 날아가 눈물겨운 어조로 호소했고,4000만달러의 차관을 약속받았다.

광부와 간호사로 이역만리에서 고생하던 교포들과 애국가를 함께 부를 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물을 훔쳤다.

이렇게 밑바닥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사는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드라마'였다.

박 대통령 옆에서 18년간 경제부국의 시나리오를 함께 만든 오원철 전 경제수석비서관(78·한국형 경제정책연구소 상임고문)이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동서문화사)를 펴냈다.

90년대 한국경제신문에 연재한 내용과 개발 비사 등을 담은 약 700쪽 분량의 방대한 분석서다.

오씨는 서울대공대 출신으로 시발자동차 공장장,상공부 공업제1국장,차관보 등을 지내면서 중화학공업화를 주도한 전형적 테크노크라트.박 대통령이 '오 국보'라고 부를 정도로 경제정책입안과 공업단지화 전략의 전문가였다.

그는 60년대 경공업 발전 단계에서 70년대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구조가 개편되는 과정을 다양한 자료로 정리하면서 박 대통령의 핵심실행력을 7단계로 설명한다.

박 대통령의 사업추진 방식은 △경제원리 도출 △이를 토대로 한 원칙수립 △세부검토 △최종결단 △강력집행 △현장확인 △적극독려의 방식으로 요약된다.

천연자원이나 가용자본도 없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출제일주의를 택해야 하고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경쟁력 강화와 중공업 위주의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지침들이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는 모자라는 국고이지만 주요과제를 위해서는 예산을 확실히 확보하는 '목돈작전'이나 대규모 공업화단지를 먼저 조성해 산업경쟁력을 앞당기는 전략도 이 같은 실행원칙 때문에 효과를 발휘했다고 말했다.

"위기 속에서 나라를 구한 아시아의 세 지도자로 일본 요시다 시게루,중국 덩샤오핑,한국 박정희를 꼽고싶다"는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의 평가처럼 경제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요즘 찬찬히 곱씹어볼 대목이 많은 책이다.

672쪽,2만원(양장 2만98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