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4일 군 당국의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며 돌연 열차 시험운행을 취소함에 따라 남북한 신뢰구축이 난관에 부딪혔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선군(先軍)정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군부의 영향력이 막강해졌다며 이번 사태는 남측의 점진적이고 실질적인 관계개선책과 북측의 근본적이고 원칙론적인 접근법이 충돌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들은 열차 시범운행 취소가 향후 남북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최근 진전되고 있던 신뢰관계에 손상이 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색국면을 속단하기는 이르다며 정부가 대북지원 카드를 적절히 활용해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라는 주장도 나왔다.

다음은 북측의 시범운행 취소 통지에 대한 전문가 진단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선군정치 하에서 군부는 북한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실세다.

북한의 군부는 남북관계 사안이 자신이 '조직 이익'과 상충할 경우 적극 개입해 왔다.

경협을 위해 개성을 비워주고 철로를 연결하는 등 남북관계 전체를 볼 때 필요한 사안에는 협조하지만 급속한 긴장완화는 환영하지 않는다.

또 북한 군부는 미국과 긴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자세가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남한의 좌우대립이나 보수세력 득세에 대한 불만은 부차적인 구실이다.

이번 열차 시범운행 취소는 분명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 상당한 악재다.

북한 군부는 다른 것은 몰라도 철도가 직접 들어오는 데 반대한다는 강력한 입장을 보인 셈이고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진전이 쉽지 않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

북한의 돌연한 열차시험운행 취소는 제4차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군사적 보장조치 합의서가 채택되지 못한 연장선이다.

남측은 이에 따라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라는 우회로를 탔지만 이 역시 실패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 내부의 정책결정 시스템에 혼선 또는 문제가 있었다고 보인다.

또한 군(軍)이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체제수호 의지가 확고하다는 측면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다.

북한은 남한과 협의과정에서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판단, 향후 지원문제를 들고 나올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장성급 회담에서 나타났듯이 양측이 군사적 긴장완화에 대한 입장차가 크다는 점이다.

북한은 불가침, 체제보장 조치를 통한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원하는 데 반해 남한은 이행 가능한 것부터 실질적인 관계개선 조치를 취하자는 것인데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양측의 신뢰구축에 큰 손실을 입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

최근 장성급 회담을 통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측의 '주고받기' 논의도 엇갈렸다.

열차 시범운행 합의에 대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정이 있었을 텐데 돌연 군사문제를 내세워 취소한 것은 남한 정부가 '줘야 할 카드'를 분명히 제시하지 못했다.

북측은 챙길 것은 챙기고 (남북 관계개선) 진도를 나가는데 남측이 확실한 지원을 정리해 제시하지 않아 더 나갈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결국 군부를 내세워 남측의 '이면합의 불이행'에 반발하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은 내달 6.15 민족통일대축전과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 등 행사를 전후해 추가적인 지원을 요구할 것이다.

양측 신뢰관계 진전에 손상이 가긴 했지만 경색국면이 계속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hanarmd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