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지식인이자 일제말기 친일파의 대부로 활동했던 좌옹 윤치호(1865∼1945?사진)가 평생 동안 썼던 영문일기중 한일합방 이후 부분을 정리한 ''윤치호 일기''(역사비평사.2만5천원)가 번역.출간됐다.

''한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통해 본 식민지 시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한일합방 이후 1916년 1월1일부터 1943년 10월7일 사이에 쓴 일기를 모은 것.

지식인이자 기독교계의 지도자였던 윤치호의 현실인식과 당시 정세,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적극적인 친일파로 변신하는 과정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은 생사가 걸린 문제인 만큼 다른 열강의 군사력에 제압되지 않는 한 조선이 독립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이 하찮은 조선을 독립시킬 요량으로 일본과 전쟁을 불사할까"(1919년 1월29일 수요일)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참석해 달라는 민족진영의 요청과 관련,윤치호가 외교적 노력이나 3.1운동 등 일체의 독립운동에 반대한 배경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윤치호가 일제에 우호적이거나 처음부터 친일파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말라"며 현실적으로 승산이 없는 독립투쟁보다는 실력부터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일제에 대해서도 "조선에 충만한 것은 천황의 은혜가 아니라 천황의 악의"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중일전쟁 이후 1938년 발생한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가족과 측근,기독교계 주요 인물들이 모두 체포된 뒤에는 적극적인 친일파로 돌아서 일제와 협력한 내용들이 일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책은 윤치호의 일기를 3.1운동 전후, 만주사변 전후, 중일전쟁.태평양전쟁 전후의 세 시기로 나눠 실었고 일제하 조선기독교에 관한 내용과 당시 조선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내용을 별도의 장으로 엮었다.

편역자 김상태(36.서울대 강사)씨는 "윤치호의 일기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과 속내는 물론 일제하의 상황이 상세히 담겨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