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절 마케팅'으로 소비심리 자극하는 수입車

"지금 예약해도 1년 기다려야 합니다"

이중 계약에 '웃돈 거래' 까지
볼보 'XC40'·폭스바겐 '티구안' 등 인기모델
판매 물량 모자라 '이중 계약' 부추기기도

파사트, 사전예약분 4400대 열흘 만에 소진
온라인서 웃돈 주고 '우선 구매권' 사고 팔기도

교묘해지는 수입차 '배짱' 판매
소비자 애태우는 '줄 세우기' 마케팅 확대
구매 욕구 자극하고 업체는 재고 부담 덜어
“지금 예약해도 1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12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수입자동차거리. 볼보 매장을 찾은 한 손님이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 XC40을 보러 왔다고 하자 돌아온 대답이다. XC40은 사전 계약대수가 1000대에 달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달까지 167대 팔리는 데 그쳤다. 왜일까. 한국에 들여오는 XC40 차량 수가 한 달에 100대도 채 안 되기 때문이다.
“인기 모델은 기다려야 합니다”폭스바겐이 파는 준중형 SUV 티구안도 마찬가지다. 대기 기간만 최소 1년이 넘는다. 하얀 색상 모델은 언제 차량을 인도받을지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폭스바겐 딜러사 관계자들조차 “여러 매장을 돌면서 이중, 삼중 계약을 맺은 뒤 먼저 연락이 오는 쪽에서 차를 사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조언해줄 정도다.

이처럼 티구안의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판매량은 매달 그대로다. 지난 5월부터 국내 판매를 시작한 신형 티구안은 매달 1500대가량 팔린다. 구매 대기자가 계속 늘어나도 판매량이 증가하진 않는다. 수입차업체들이 판매 물량을 조절해 ‘품절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폭스바겐 관계자는 “판매 물량을 따로 조절하지는 않는다”며 “신형 티구안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높아 물량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수입차업체들이 찔끔찔끔 차량을 시장에 풀면서 소비자들이 웃돈을 주고 ‘우선구매권’을 사고파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지난달 10일 카카오톡 스토어를 통해 미국형 파사트 사전 예약을 받았다. 물량이 1000대로 한정돼 있어 1차 예약 때 소비자가 몰리면서 예약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2차 예약은 시작된 지 1분 만에 마감되는 등 소동이 이어졌다. 급기야 예약 권한을 50만~100만원에 사고파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차를 빨리 받고 싶은 일부 소비자가 사전 예약 때 주어지는 할인 혜택보다 더 큰 금액의 웃돈을 주고 예약권 구매에 나서면서다. 미국형 파사트의 올해 판매 예정 물량(약 4400대)은 사전 계약 때 열흘 만에 소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량 적은 미끼상품 내걸기도

수입차업계의 마케팅 전략이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기존엔 정가에 차를 팔다가 재고가 쌓이면 할인율을 높여 떨이 판매를 해왔다. 최근 들어선 선제적으로 할인하며 소비자를 모은 뒤 ‘줄을 세워’ 판매하는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약자가 많이 몰린 모델은 수입 물량을 늘리기보다 더 많은 소비자를 줄 세워 입소문을 타게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품절 마케팅이다.수입차업체들은 품절 마케팅을 통해 재고 부담도 덜고 있다. ‘적당한’ 물량만 들여와 이른 시일에 소진하면 보관비용도 덜고, 재고에 떠밀려 할인 판매를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수입차업계가 배짱 판매에 나서도 소비자들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부 수입차업체들은 공급 물량이 적은 인기 모델을 미끼 상품으로 내거는 ‘꼼수’까지 동원하고 있다. 예약금을 걸고 기다리는 소비자에게 연락해 다른 차량을 추천하는 식이다. 한정 할인판매를 빌미로 자사 인증 중고차 판매망을 홍보하고 금융업체 이용을 독려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아우디코리아는 최근 준중형 세단 A3를 최대 40%가량 가격을 깎아 팔면서 자사 인증 중고차 판매망을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높은 할인율을 적용받으려면 자사 할부 프로그램을 이용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품절 마케팅은 가게 안에 자리가 있어도 밖에 줄을 세워놓는 유명 맛집들의 전략과 비슷하다”며 “업체들의 마케팅 전략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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