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사(枯死) 위기에 내몰린 자동차 부품업계에 대한 긴급 실태 조사

"車부품사 줄도산 막자" 뒤늦게 나선 정부

입력 2018-09-11 17:49:55 수정 2018-09-12 10:20:50
8000社 긴급 실태조사 착수

산업부, 지원대책 마련하기로
개소세 인하 내년까지 연장
자금 추가지원 등 다각 검토

법정관리 내몰리는 車 부품사…"기촉법 부활시켜 회생 기회 줘야"

다이나맥 등 중견업체도 줄줄이 쓰러져
위기 1년 넘게 이어졌는데 이제야 실태조사
"특단 대책 없으면 회생법원 미어터질 것"
정부가 고사(枯死) 위기에 내몰린 자동차 부품업계에 대한 긴급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추가 자금 지원을 비롯해 △올해 말 끝나는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5.0%→3.5%) 내년 상반기까지 연장 △일몰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 기한 연장 △은행권 대출 만기 연장 및 금리 인하 △추가 세제 지원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검토하기로 했다. 경기 침체와 완성차업체의 판매 부진 탓에 굵직한 자동차 부품사들이 잇달아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등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본지 7월13일자 A1, 5면 / 9월5일자 A1, 3면 참조

11일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들이 자동차 부품산업 실태 조사 및 지원 대책 마련에 나섰다. 8000여 곳에 달하는 부품사들의 ‘줄도산’을 막지 못하면 자동차산업 생태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일자리가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산업부는 최근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부산과 울산, 경남 창원, 인천 등 지역별로 부품업계 실태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부품사들의 공장 가동률과 자금 현황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계획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주요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해 이른 시간 안에 실태 조사를 마칠 방침”이라며 “자동차 관련 산업이 무너지지 않도록 동원 가능한 모든 단기 및 중·장기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올 하반기 각 부품업체에 연구개발(R&D) 용도로 지원할 추가경정예산 300억원을 확보한 데 이어 내년에도 250억원가량의 예산을 추가 집행하기로 했다. 자동차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올해 말로 끝나는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도 내년 상반기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기재부 등과 협의하기로 했다. 올 들어 상장 부품사 82곳 중 25곳(30.5%)이 적자를 냈을 정도로 부품업계의 경영난은 심각하다. 은행에서 빌린 돈마저 갚지 못해 부품사들의 연체율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자동차 부품회사들의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해 지난 6월 말 기한이 끝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부활’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은행들이 자금난에 처한 부품사들의 구조조정을 돕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추진하는 데 법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기촉법이 없으면 한계에 몰린 자동차 부품사들이 워크아웃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절차를 밟거나 공중분해될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위의 판단이다.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인 리한이 기촉법 종료 직전인 6월 말 워크아웃을 신청한 이후 중견 부품사 다이나맥 등이 잇따라 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뒤늦게 대책 마련 나선 정부

기촉법 일몰 기한을 연장하는 법 개정안은 국회에 올라와 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가로막혀 있다. 기촉법은 2001년 제정된 한시법으로 그동안 연장과 폐지가 반복돼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지난달 말 이 법의 유효기한을 삭제해 상시화하거나 기한을 3년 또는 5년으로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정무위가 넘긴 이 개정안은 법사위에서 발목이 잡혔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의를 제기한 데 이어 법원 행정처 등 일부 부처가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최대한 빨리 국회를 설득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금난에 처한 부품사들의 원활한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기촉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품업계에선 이번 정기 국회에서 기촉법을 부활시키지 못하면 ‘도미노 법정관리’가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자금난에 빠진 부품사들이 워크아웃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대거 법원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어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완성차업체의 1차 협력업체 한 곳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채무가 동결돼 2, 3차 업체 수십 곳이 직격탄을 맞는다”며 “1차 협력사들이 한꺼번에 법정관리에 내몰리면 심각한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도 뒤늦게 자동차 부품업계의 현황 파악에 들어갔다. 기재부는 자동차산업 생태계 붕괴를 막기 위해 추가 예산 확보 및 세제 지원 등이 가능한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적자 늪’에 빠진 車 부품업계

자동차산업을 떠받쳐온 부품업체들은 올 들어 ‘줄도산’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차 1차 협력사인 리한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데 이어 중견 부품사 다이나맥, 금문산업, 이원솔루텍 등이 줄줄이 법정관리에 내몰리는 등 굵직한 부품사들이 연이어 쓰러지면서다. 차 부품업체들의 연쇄 도산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는 이유다.

상당수 부품사는 이미 ‘적자의 늪’에 빠져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상장 부품사 82곳의 올 상반기 실적을 전수조사한 결과 25곳(30.5%)이 적자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52곳(63.4%)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매출이 줄어 성장엔진이 꺼져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중국의 ‘사드 보복’에 이어 올초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까지 겹치며 부품업체들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한계상황에 몰렸다는 분석이다.

2, 3차 협력사의 경우 정부의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폐업 위기에 몰린 2, 3차 협력업체들이 1차 협력사로부터 받은 주문을 반납하고 “차라리 공장을 인수해달라”며 자포자기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한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올 연말이나 내년 초 부품사들이 대거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회생법원이 미어터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장창민/조재길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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