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쇼크라고요? 울산은 쇼크를 넘어 이미 지옥 수준입니다.” 울산 북

"일감 없어 피 마르는데… 정부 믿고 더 기다리라니"

입력 2018-08-20 17:50:15 수정 2018-08-21 09:09:39
무너지는 일자리 생태계

불황·최저임금·주 52시간
'고용 모세혈관' 영세 中企부터 말라간다

불황에 최저임금 쇼크 겹쳐
車·조선 3차 협력사 '직격탄'

자영업 악화에 관련기업 타격
일자리 또 증발 '악순환'

< 최저임금 인상 규탄 > 한국외식업중앙회 주최로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 인상 규탄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참가한 자영업자들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고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고용쇼크라고요? 울산은 쇼크를 넘어 이미 지옥 수준입니다.”

울산 북구 연암동의 한 자동차부품업체에서 일하는 P씨(53)는 며칠 전 실업수당 상담을 받으러 지역 고용노동청을 방문했다. 현대자동차 3차 협력업체로 잘나가던 곳이지만 경영난을 견디지 못한 사업주가 연내 폐업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 대표는 “부품 주문량 감소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부담이 맞물리면서 연초에 직원 절반을 내보냈다”며 “내년에도 최저임금을 두 자릿수 올려줘야 해 더 이상 사업체를 운영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한때 대한민국 제조업의 심장이던 울산의 고용상황은 최악이다. 7월 울산 지역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1만9000명 줄었다. 취업자가 1만 명 이상 감소한 것은 외환위기 때도 없던 일이다. 경기 침체에 따른 완성차 판매 감소가 부품업체에 직격탄을 날린 데다 2, 3차 협력업체로 갈수록 최저임금 인상 부담까지 더해진 탓이다.

울산뿐만이 아니다. 자동차와 조선업체가 몰린 전북 군산, 경남 거제와 창원 등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조업 침체는 지역 연관 산업에 연쇄 파장을 낳고 있다. 울산은 상반기 법인사업자 폐업률(1년간 개업 대비 폐업 수)이 70% 이상으로 치솟았다. 영세 자영업자로 구성된 간이사업자 폐업률은 80%를 웃돌았다.

통계청이 지난 17일 발표한 ‘7월 고용쇼크’의 또 다른 축은 자영업 몰락이다. 지난달 전국적으로 자영업 3만 곳이 문을 닫았다. 자영업 악화는 또 다른 경로로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 예컨대 식당 폐업 증가는 주방용품업체 실적 감소로, 이는 다시 금형 및 스테인리스스틸업체 타격으로 이어져 일자리 감소 영향이 2~3배로 커진다.

서울 여의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L씨는 “최저임금 인상에다 근로시간 단축 여파로 손님이 줄어 당장이라도 문을 닫아야 할 판인데, 정책당국자들은 정부를 믿고 더 기다려달라고 하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9일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고용지표 악화에 대해 “정부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취업자 수 증가폭이 5000명대로 급감한 7월 고용쇼크에는 두 가지 요인이 컸다. 산업의 중추인 제조업 일자리가 12만 개나 감소하며 충격을 줬고, 연초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자영업 일자리 상황도 크게 나빠졌다. 제조업과 자영업 침체는 서로 다른 경로로 일자리 생태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제조업은 경기 침체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등 복합적 요인이 맞물리며 부품업체 등 기업 생태계의 밑단으로 갈수록 일자리 타격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특히 일자리 감소가 가장 컸던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고용쇼크는 심각한 수준이다.

◆자동차 일자리 생태계 붕괴

매출 1000억원 규모의 현대자동차 2차 협력사 B사는 최근 부도를 냈다. 이 회사는 매년 3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지난해 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수개월간 직원 임금이 밀렸고 결국 만기가 돌아온 어음을 막지 못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얼마나 많은 2, 3차 협력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는지 정확하게 파악조차 안 된다”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건재했던 자동차 부품업계가 통째로 흔들리면서 고용쇼크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침체 여파로 완성차 판매가 감소하면서 일감이 줄어든 부품업체들은 고사 직전에 몰리고 있다. 덩치가 큰 1차 협력업체는 그나마 낫다. 2, 3차 협력업체로 내려갈수록 일감 부족에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부담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2, 3차 협력사의 위기가 1차 협력사로, 또 완성차 제조사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부품사 대표는 “완성차 판매량 감소로 인해 일감이 줄어든 데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외부 요인까지 더해져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실직위기 몰린 조선 협력사 근로자

조선업계 협력사의 사정도 비슷하다. 업계 관계자는 “2, 3차 협력업체가 문을 닫는 건 이미 몇 년 동안 계속된 현상”이라며 “남아 있는 업체도 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울산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 공장 사내 협력업체 근로자 2000여 명은 이달 말부터 실업자가 될 처지다. 원유와 가스 생산·시추 설비 등을 생산하는 이 공장은 2014년 11월 이후 45개월째 수주 실적이 전혀 없어 오는 25일께부터 가동을 중단할 계획이다. 협력업체에서 용접공으로 일해온 근로자 김모씨(35)는 지난주부터 퇴근 후 3~4시간씩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김씨는 “하도급계약에 따라 일감을 받는 협력사는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대중공업 본사가 있는 울산 동구 지역 250개 조선 협력업체의 4대 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건강보험·산재보험) 체납액은 지난달 기준 311억원에 달한다. 근로자 수 감소폭도 협력업체가 더 크다.

◆자영업 악화의 연쇄 파장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은 또 다른 경로로 고용 충격을 확대시키고 있다. 식당 편의점 등 영세 자영업일수록 경기 침체와 최저임금 등 정책적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 7월부터는 기업의 회식이 급속히 줄면서 타격이 더 커졌다.

구로디지털단지에서 25년째 식당을 하고 있는 P씨는 “외환위기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커진 인건비 부담은 감내한다 하더라도 주 52시간 근로제로 회식이 사라진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P씨는 당초 인근에 식당을 내려 했지만 접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식당 폐업과 개업 지연은 주방용품 관련업체들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한 주방 업체 관계자는 “기업들은 기존에 주문했던 직원 식당 공사를 늦추고, 일반 식당에선 시설 주문을 급속히 줄이고 있다”고 전했다. 주방업체에 금형과 스테인리스스틸을 납품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인력을 줄였다. 자영업자의 몰락이 관련 제조업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셈이다.

서울 구로동·문래동·신도림동 등 소기업 밀집지역에서는 숙련공을 제외한 직원을 내보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습공은 제조업 일자리 생태계의 맨 밑바닥에 있는 층이어서 이들의 타격은 더 클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울산=하인식/창원=김해연/도병욱/김보형/김낙훈/이우상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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