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이 대한민국 경제지도를 바꾸고 있다. 건설현장 등 일부 업종

비수기에 붐비는 백화점, 휴가철 피서지 썰렁… '여름 장사' 공식 깨져

입력 2018-08-02 18:09:07 수정 2018-08-03 06:08:01
폭염의 경제학

< 북적이는 백화점 > 서울 을지로 롯데백화점 본점이 2일 피서객과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기록적인 폭염이 대한민국 경제지도를 바꾸고 있다. 건설현장 등 일부 업종에 차질이 빚어지고 농산물 작황도 타격을 받는 등 예상치 못한 경제적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백화점, 대형마트, 복합쇼핑몰 등에는 더위를 피하려는 소비자가 몰려 매출이 껑충 뛰고 있다. 반면 냉방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은 전통시장에는 방문자 모습을 찾기가 힘들다. 무더위가 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빗나간 전력 예측… 에너지 수급계획 흔들

이상 폭염은 장기 에너지 수급계획까지 흔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와 같은 이상 기후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차기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장기 계획 수정을 검토하는 건 이례적이다.

무엇보다 올여름 전력수요 예측이 번번이 빗나간 게 가장 큰 이유다. 산업부는 지난달 5일 내놓은 하계 전력수급대책에서 최대 전력수요를 8830만㎾로 예측했다. 작년 말 8차 전력계획에서 예상한 최대수요(8750만㎾)보다 80만㎾ 늘려 잡았다. 하지만 최대 전력수요는 지난주 평일 5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9000만㎾를 넘었다. 산업부는 폭염 속 전력수급 대책을 새로 짜기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전력수급 자문 태스크포스(TF)’도 마련했다. 한국전력거래소는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를 다시 예측한 수정치를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올해와 같은 이상 기온이 반복될 수 있는 만큼 수요관리 위주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기후변화로 이상 기온이 일상화되면서 냉·난방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발전소를 적게 짓고 전력수요를 줄이는 정책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한산한 전통시장 > 2일 냉방기기가 없는 서울의 한 전통시장엔 소비자 발길이 뚝 끊겼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쇼핑몰·대형마트 매출 10% 안팎 뛰어

사상 최악의 폭염과 열대야로 백화점, 복합쇼핑몰, 대형마트 등이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휴가철인 7~8월은 비수기라는 업계의 통설이 무색해질 정도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폭염이 시작된 지난달 11일부터 31일까지 롯데백화점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7.2% 증가했다. 양산 판매액은 63.2%나 급증했다. 이 기간 현대백화점 매출도 7.8%, 고객 수는 7.5% 늘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지난 주말 점심과 저녁시간대 식당가엔 30분 넘게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마트의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는 7월23일~8월1일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37.2% 급증했다.

폭염은 쇼핑 패턴까지 바꿔 놓고 있다. 7월16일~8월1일 사이 매출이 11.2% 증가한 신세계백화점에선 티셔츠 반바지 등 가격 부담이 작은 상품의 판매가 두드러졌다. 더위를 피해 매장에 들렀다가 즉흥적으로 지갑을 여는 고객이 늘어난 영향이다. 고객들의 백화점 체류시간도 1시간 정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유통매장과 달리 전통시장은 방문객이 줄어 울상을 짓고 있다. 서울 독립문에 있는 영천시장의 한 상인은 “저녁 시간에 장을 보러 나오는 사람들이 30% 이상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오피스 빌딩의 구내식당은 붐비는 반면 음식점 식당가는 손님이 확 줄었다.

농산물 작황 최악… 식탁물가 '고공비행'

배추 무 수박 등 농산물 가격이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일부 채소류 가격은 평년에 비해 100% 가까이 올랐다. 정부는 폭염이 서민 물가까지 들썩이게 하자 비축 물량을 서둘러 푸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2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날 양배추 평균 소매가격은 포기당 5401원으로, 평년 가격(2785원)에 비해 93.9% 올랐다. 배추는 포기당 5404원에 거래돼 평년보다 58.5%, 한 달 전에 비해 81.9% 상승했다. 무는 개당 2951원으로, 평년 대비 53.7% 올랐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배추 무 등의 가격이 뛰는 것은 주산지인 강원 태백·정선·강릉 등 고랭지에 폭염과 가뭄이 동시에 닥쳐 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름 과일도 ‘금값’이다. 수박은 한 통에 2만2947원이다. 평년보다 31.4%, 한 달 전과 비교하면 38.4% 상승했다. 참외는 10개들이가 1만5565원으로 평년 대비 19.3% 비싸졌다.

폭염으로 과잉 생산돼 가격이 폭락한 작물도 있다. 애호박은 개당 가격이 877원으로 평년 대비 30.8% 하락했다.

농협손해보험에 따르면 올여름 540개 농지에서 농작물 피해가 접수됐다. 피해 작물은 사과 대추 복숭아 등으로, 주로 일소(햇볕에 탐) 피해였다.

에어컨 공장 풀가동해도 수요 못 따라가

유례없는 폭염이 2주 이상 지속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계도 에어컨 물량 및 설치 기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국내 에어컨 판매량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에는 2년 단위로 묶이는 전세계약 영향 등으로 에어컨 경기도 2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더위에 이런 주기가 무색해졌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에어컨 대란’을 겪은 전자업계는 에어컨을 ‘4계절 가전’으로 마케팅하고 수요를 분산시키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LG전자 경남 창원공장은 2월부터, 삼성전자 광주공장은 3월부터 이미 ‘완전가동’에 들어갔다. 이렇게 미리 제품 생산에 나섰지만 연일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무더위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LG전자의 7월 에어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이상 급증했고, 캐리어 에어컨은 올 들어 7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늘었다.

주·야간 2교대제로 운영하는 삼성전자 광주공장 직원들은 하루 2시간씩 잔업을 하며 주 52시간을 꽉 채워 근무하고 있다. LG전자 창원공장 근로자는 오는 6~10일 예정됐던 휴가도 반납했다. 캐리어에어컨 광주공장은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공장 안 적재창고에 간이 생산라인을 마련했다.

너무 더워 맥주도 안 마셔… 간편식은 인기

여름이 성수기인 맥주업계는 울상이다. 폭염 여파로 맥주 소비가 줄고 있어서다. 낮 최고기온이 32~33도에서 맥주 소비가 늘어나지만 그 이상 기온이 올라가면 술 마시는 것 자체를 꺼리는 탓이다. 폭염이 장기화하면서 지역 맥주 축제와 해변의 맥주 이벤트도 일부 취소되고 있다.

이마트가 폭염이 시작된 지난달 13일부터 30일까지 매출을 조사한 결과 맥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 이상 하락했다. 날씨가 너무 덥고 몸이 지쳐 알코올 음료를 마시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 기간 소주 매출도 -2.4%를 기록했다. 맥주를 대체하는 생수(10.3%)와 탄산음료(26.5%) 매출은 올랐다. 편의점에서도 맥주 매출 증가세가 주춤해졌다. 지난 5년간 7~8월에 10% 이상 성장하던 맥주 판매량은 지난달 8%대 성장에 그쳤다. 불을 피워야 하는 고깃집 등이 텅텅 비면서 업소용 맥주 매출도 떨어졌다. 업계는 7월 업소용 맥주 판매량이 지난달 10% 이상 하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가스 불을 켜지 않고 조리할 수 있는 식품 매출은 소폭 상승했다. 라면은 봉지라면 매출이 5.7% 하락했지만 컵라면은 7.2% 늘었다. 조리 과정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HMR)은 7월 판매량이 15.7% 증가했다.

지방 여름축제 취소… 박물관·호텔 북적

최악의 폭염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계획했던 축제들이 대거 취소되고 바다 등 주요 피서지에 사람이 가지 않는 등 폭염이 피서 유형까지 바꿔 놓고 있다.

한낮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간 강원 홍천은 홍천강 수중보 일대에서 오는 11일부터 이틀간 열릴 예정이던 홍천강 수상 레포츠 체험행사를 취소하기로 했다. 폭염에다 축제장인 홍천강의 물 유입 감소로 행사를 추진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홍천군 관계자는 “당분간 비 소식이 없는 데다 행사를 위해 물을 가두면 부영양화와 하류에 물이 부족해 농사 등에 차질이 우려돼 행사를 마련한 단체와 협의해 취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농촌에서 열리는 농산물 축제와 직거래 장터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방문객 수가 뚝 떨어지고 매출이 급감하면서 흥행에 실패한 행사가 속출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해 야외 테마파크도 관람객이 현저하게 줄고 박물관이나 실내형 테마파크엔 사람이 몰리고 있다. 더운 날씨 탓에 체력과 시간 소모가 큰 장거리 여행보다 냉방시설을 잘 갖춘 쇼핑몰과 백화점, 호텔 등에서 피서하려는 사람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홈캉스(홈+바캉스)부터 호캉스(호텔+바캉스), 몰캉스(쇼핑몰+바캉스), 커피서(커피전문점+피서) 등 다양한 피서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

성수영/류시훈/이태훈/고재연/김보라 기자/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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