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들 "차라리 한국 떠나겠다"

주 52시간 포비아

300인 미만 사업장에 3년 유예기간 줬지만…

일자리 감소 '역풍'
해외 생산 설비를 확대하는 중소·중견기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에 근로시간 단축이 겹치면서 인건비 부담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서다.

충남 아산에 있는 케이블 제조사인 화일전자는 아산 공장의 생산 설비를 줄이고 중국 산둥 지역 설비 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회사 임직원 수는 300인 미만으로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주 68시간→52시간) 대상이 아니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을 2021년 7월까지 단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일전자가 벌써부터 해외 투자를 고민하는 이유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사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주 52시간 제도가 시행되면 현재 12시간 주야 맞교대 근무체제를 8시간 3교대 등으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 30%의 인력을 추가 고용해야 한다. 윤장혁 화일전자 사장은 “주변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대부분 앞으로 3년간 착실히 준비해 해외로 나가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손해를 보고 공장을 돌릴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업계에선 “기술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이 우선적으로 해외로 나갈 채비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자동차용 금형(금속으로 만든 거푸집) 등을 제조하는 A사는 현대·기아자동차뿐 아니라 독일 BMW, 폭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납품하는 중견기업이다. 이 회사는 올해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100억원대 영업이익이 반토막 날 것으로 우려했다. A사 부사장은 “중국 근로자 임금은 한국의 5분의 1, 베트남은 100의 7 수준에 불과한데 1인당 생산성은 오히려 한국보다 높다”며 “근로시간 단축을 계기로 국내 공장의 절반가량을 해외로 옮기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2, 3차 협력회사들은 대기업 또는 1차 협력사들이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늘어나는 인건비를 협력사에 전가할지 모른다는 불안도 느낀다.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가전, 자동차, 정보기술(IT) 분야 중소기업이 이런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 대기업 CEO는 “대기업은 국내 기업뿐 아니라 해외 기업들로부터도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며 “최근 일련의 노동정책이 국내 일자리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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