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원대 자산가인 김영수씨(가명·55)는 지난 20년간 서울 건대입구역(2·7호
[집코노미]

역세권 원룸 20년 넘게 사모으다가 결국…

입력 2018-06-05 07:30:00 수정 2018-06-05 07:30:00
역세권 원룸 공격적 매입…"300억 자산가로"
매월 수천만원 현금흐름에다 시세차익 '두둑'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대입구역 일대 번화가. 네이버 거리뷰 캡처


300억원대 자산가인 김영수씨(가명·55)는 지난 20년간 서울 건대입구역(2·7호선) 인근 원룸 건물만 사모아 부자가 됐다. 아파트 상가 토지 등 다른 부동산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실수요 목적으로 강남구 소재 타워팰리스와 제주도 전원주택을 매입한 정도다. 그렇게 사모은 원룸주택이 5채다. 한달 월세만 수천만원이다. 집코노미가 제주도에서 경제적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김씨를 인터뷰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김씨 부부는 1990년대 중반 결혼했다. 결혼 당시 건대입구역 인근 5층 규모의 원룸주택을 구입했다. 아직 7호선이 개통하지 않아 지금 만큼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은 때였다. 20대 초반부터 의류사업을 벌여 알뜰살뜰 모은 8억원이 종잣돈이 됐다. 5층에 가정을 꾸리고 아래층 상가와 원룸은 월세를 줬다. 건국대나 세종대에 다니는 학생들이 주로 들어왔다.

주위 친구들은 8억원이나 주고 원룸주택을 매입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모두 생활하기 편한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또 수천만 원 짜리 골프장 회원권을 네다섯 개씩 사들이거나 상가에 투자했다. 특히 상가가 유망 투자처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A씨는 상가 쪽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소유주가 수백명씩 되는 테마상가나 소규모 상가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봤다.

처음 산 건물에서 매달 임대소득이 700만~800만 원씩 나왔다. 주변에 대학교가 있어 학생들의 임차 수요가 꾸준했다. 1996년 7호선까지 개통하자 직장인들까지 몰려들었다. A씨 소유 건물뿐 아니라 주변 원룸에 공실이 거의 없었다. 더블 역세권이 되면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고 원룸수요도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 적중했다. 이 건물은 지금 40억원을 호가한다.

◆위기를 기회로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위기가 찾아왔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혹한기에 접어들면서 학생과 직장인으로 가득했던 건물에 공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건국대에서 기숙사를 새로 지으면서 학생들의 임차 수요도 감소했다. 인근 원룸 건물들이 헐값에 나오기 시작했다. A씨도 건물 처분을 고민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기로 했다. 평소 신념이었던 ‘부동산은 거짓말을 안 한다’라는 말을 곱씹었다. 그때 건대입구역 인근 원룸 건물이 6억 원에 나왔다. 금융 위기 전만 해도 15억 원을 호가하던 물건이었다. 동생 3명과 함께 그 물건을 매입했다. 그동안 벌어들인 월세 수익이 종잣돈이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어서 은행 대출을 일으켜 25억 원짜리 원룸 건물을 추가로 매입했다.

매입 후 2년이 지나자 꺾였던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공실이 줄어들고 싼값에 샀던 건물들의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김씨는 “외환 위기때 공격적으로 건물을 산 게 신의 한수였다”며 “주변 지인들은 겁에 질려 부동산을 사기는 커녕 못팔아 안달이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월세 수입을 모아 주변 원룸 건물을 두채 더 샀다. 오래된 원룸 건물을 매입한 뒤 리모델링을 했다. 토지를 매입해 새 건물을 짓는 것보다 경제적이라고 판단해서다. 리모델링을 통해 변화하는 주거 스타일을 따라갈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났다. 원룸 건물 5개 동 외에도 건대입구역 일대 원룸들도 한 실씩 꾸준히 사들여 나갔다.

◆“역세권 건물은 파는 게 아니다”

김씨는 월세수입과 시세차익을 동시에 누리고 있다. 건대입구역 상권이 커지면서 시세차익이 급격히 불어났다. 김씨는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보유한 부동산만 따져도 시가가 200억원을 훌쩍 넘는다. 게다가 매월 수천만원이 따박따박 통장에 들어온다. 더블 역세권인 데다 강남과 가까운 입지 조건 덕분에 임차 수요도 꾸준하다.

김씨가 스스로 꼽는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월세수입과 시세차익을 동시에 겨냥한 점을 꼽는다. 그냥 집합 건물내 상가를 샀다면 시세차익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널찍한 땅을 깔고 앉아 있었기에 지가 상승 수혜를 누릴 수 있었다.

될 성 부른 지역 부동산에 장기 투자를 한 것도 주요 비결로 꼽았다. 김씨는 “전철역만 주변에 있으면 무조건 붙들고 있는 게 좋다”며 “건물을 사서 2~3년 만에 빨리 처분하는 걸로 큰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가지 아이템에 집중한 것도 주효했다. 일반인이 100실이 넘는 원룸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다양한 노하우를 쌓은 김씨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 원룸 한곳에만 집중하다 보니 저평가된 물건을 보는 눈도 생겼다.

A씨가 소유한 제주 애월읍 인근 근린생활시설. 네이버 거리뷰 캡처


◆경제적 자유 만끽

자산이 불어나면서 그의 삶은 꾸준히 업그레이드됐다. 자녀들이 자라자 타워팰리스를 분양받아 주거지를 옮겼다. 지금은 제주 애월읍에 전원주택을 마련해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생활한다. 서울에서 임대사업을 하면서 얻은 노하우로 애월읍 해안가에 2층 규모의 근린생활시설을 매입해 세를 주고 있다. 카페, 양초가게 등이 입점해 있다. 입소문을 타고 애월읍 명소가 됐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공부만은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임대 사업 규모가 커지자 대학원에 등록해 부동산을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그동안 쌓아온 자산을 잘 지키고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대학원에서 김씨를 가르친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월세수입과 시세차익까지 동시에 겨냥하는 꼬마빌딩 투자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말했다. A씨는 “통일이 되면 북쪽 땅에 투자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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