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0일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정부

자신이 쓴 보고서가 '지배구조 정답'이라며 삼성 몰아친 김상조

입력 2018-05-10 17:34:44 수정 2018-05-11 07:49:58
김상조-10대 그룹 CEO 간담회

공정위·금융위 '금융지주사 전환' 동시 압박

2년前엔 삼성이 타진했지만 금융委가 '퇴짜'
삼성전자 지분 11.8兆 매각 '가이드라인' 제시
"지분 매각 땐 시장에 충격·경영권 위협 우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10대 그룹 전문경영인들이 10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혁구 신세계 사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김준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 위원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김상조 위원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하현회 LG 부회장, 정택근 GS 부회장,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 김준동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이상훈 두산 사장.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0일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정부 측 ‘답안지’를 내놨다. 김 위원장은 이날 자신이 시민단체(경제개혁연대 소장)에서 일할 때 쓴 보고서에 ‘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답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삼성 안팎에서는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라는 정부 측 의사 표시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주식을 한 주도 보유하지 않은 정부가 민간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방향에 대해 지나치게 개입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명·전자 중심 지주사 전환”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10대 그룹 경영진과의 간담회가 끝난 뒤 직접 마이크를 잡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는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향후 지배구조 전망’을 묻는 말에 “2016년 2월 경제개혁연대 보고서를 보라”고 말했다. “삼성생명 및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모든 법률적 위험 요소와 시행 방안을 이미 다 써놨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보고서는 ‘삼성그룹의 금융지주회사 설립: 분석과 전망’이란 제목으로 A4 용지 17페이지 분량이다. 그가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았을 때 직접 썼다.


삼성그룹 지주사 체제 전환이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지주사 설립 △삼성전자 중심의 일반지주사 설립 △금융지주사와 일반지주사를 수직으로 연결하기 등 세 단계로 진행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발표 당시 삼성에서도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법적인 문제와 논란거리를 정확하게 짚었다”는 평가를 내놨다.

삼성은 내심 금융 계열사들의 시너지를 위해 금융지주사 전환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주사 재편 작업은 ‘올스톱’된 상태다. 김 위원장이 예상한 세 단계 중 첫 단계인 금융지주사 전환작업부터 꽉 막혔다.

삼성은 2016년 초 삼성생명을 분할해 금융지주사로 전환하는 내용의 금융지주사 전환 계획을 금융위원회에 전달했다. 당시 금융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융위는 △지주사에 과도한 현금을 배정하는 분할방식 △삼성전자 지분 매각 차익의 분배 문제 △지주사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유예기간(최장 7년) 요청 등이 논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전자 지분 3.6% 매각하나

김 위원장이 약 2년 만에 다시 ‘경제개혁연대 보고서’를 꺼내든 것은 삼성생명을 금융지주사로 전환하라는 ‘압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가 삼성의 구체적인 지배구조 개편 방향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정부는 “삼성생명 자산이 특정 주식(삼성전자)에 편중돼 있다”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종용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은 “삼성이 스스로 결정하라”고 했다.

김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전날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타당하면 금융위 입장을 정하거나 국회 논의 과정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말과도 궤를 같이한다. 금융지주사 전환 과정에 불거질 수 있는 법적인 걸림돌을 해결해주겠다는 의사를 에둘러 내비쳤다는 설명이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도 “공정거래위원장과 금융위원장의 마음속에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매각해야 할 삼성전자 지분 규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삼성그룹 내 삼성전자 최대주주는 지분 8.23%를 보유한 삼성생명, 2대 주주는 4.63%를 가진 삼성물산이다. 금융지주사법에 따르면 금융지주사의 자회사(삼성생명)는 비금융 계열사(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없다. 삼성생명이 최대주주가 되지 않으려면 삼성전자 지분 3.6%(10일 종가 기준 11조8000억원어치) 이상을 외부에 팔아야 한다. 김 위원장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다 팔 필요가 없다는 게 보고서에 정확히 기술돼 있다”고 콕 집어 언급한 배경이다.

당혹스러워하는 삼성

삼성 측은 공정위와 금융위 수장이 연일 지배구조를 개편하라고 압박하고 나서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공정위는 정부의 재벌개혁을 총괄하고 있고 금융위는 ‘자산건전성’ 검사 등을 내세워 금융사들의 목줄을 죌 권한을 갖고 있다. 삼성 측으로선 지배구조 개편과 연관된 뇌물죄 재판의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작업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고민거리다. 현실적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내다팔 곳도 마땅치 않다. 10조원이 넘는 주식을 시장에 매각하면 주가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큰 데다 투기세력 등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도 있어서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좌동욱/임도원/고재연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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