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에 아무 필요도 없는 건설기술자를 다섯 명 이상 항상 고용하고 있어

"분양대행업체에 '집 짓는 기술자' 고용하라니… 번지수 잘못 짚어"

입력 2018-05-10 17:37:42 수정 2018-05-11 09:37:36
분양대행 규제 '후폭풍'

분양대행업계 "전형적 탁상행정" 거센 반발

업계 '급한 불' 끄기
서초·군포 등 청약 연기
건설사 상담인력만 직접채용
대행사엔 면허 취득 독려

"청약시스템부터 고쳐라"
"건설업 등록요건 갖추려면
업무 연관성 없는 기술사
5명 필요…年 1.5억 소요
중소대행사들 다 망할 것"

한 수도권 아파트 분양 모델하우스에서 내방객이 단지 모형도를 살펴보고 있다. /한경DB


“업무에 아무 필요도 없는 건설기술자를 다섯 명 이상 항상 고용하고 있어야 합니다. 비용 부담 탓에 중소 분양대행업체는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분양대행 비용 상승은 분양가 상승으로 연결될 겁니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입니다.” 정부가 건설업 등록을 한 업체만 분양대행을 할 수 있도록 하자 건설업체와 분양대행업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업무에 필요도 없는 인력을 상시 고용해야 하는 까닭이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영업맨에게 정비기술 자격증을 따라고 하는 격”이라며 “굳이 규제하려면 분양전문 인력의 자격요건을 만들고 상시고용토록 하는 것이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건설회사의 3분의 2 이상은 분양업무를 분양대행업체에 맡기고 있다.


분양 일정 맞추느라 발등에 불

국토교통부의 분양대행 업무 규제에 이달 분양을 앞둔 아파트 분양현장은 청약 일정을 맞추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일정이 촉박한 건설사는 청약 상담 및 접수 인력을 직접 채용하는 방식으로 급한 불을 껐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당장 이번주 구청의 분양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건설업 등록을 할 여유가 없다”며 “면허가 없어도 할 수 있는 단순 분양광고 및 마케팅 업무만 맡고 다른 업무는 건설사가 담당하기로 계약을 변경한 뒤 승인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 대유평지구 2-2블록에 들어서는 ‘화서역 파크 푸르지오’, 충북 청주시 동남지구 B7블록에 짓는 ‘청주 동남지구 우미린 풀하우스’, 인천 도화지구에 분양되는 ‘인천도화 금강펜테리움 센트럴파크’ 등이 이런 식으로 11일 모델하우스 개장 일정을 맞췄다. 이달 중순 분양 예정이었던 단지 중 일부는 일정을 연기했다.

김건용 HDC현대산업개발 마케팅담당 상무는 “이달 분양 물량은 직영을 통해 해결하고, 6월 이후 분양 물량은 자격을 갖춘 분양대행사에 맡기려는 분위기”라며 “대형 건설사가 분양대행사에 건설업 면허 취득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 상황이 녹록지 않은 중견 건설사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 규제 때문에 분양대행사의 전문적인 노하우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손실”이라며 “중견 건설사는 분양 현장에만 매달리다 보면 다른 시장을 놓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분양대행사 반발 확산

일부 분양대행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업무와 상관없는 건설업 면허를 신청하기로 했다. 승인까지는 통상 20일가량 걸리지만 이른 시일 안에 필요 인력을 채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모든 절차에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두 달까지 걸릴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 경기 군포시 보령제약 부지에 들어서는 ‘힐스테이트 금정역’의 분양대행사인 ‘건물과 사람들’은 국토부 규제가 나오자마자 건설업 등록을 하기로 했다. 씨엘케이 유성 등 자금력을 갖춘 대형 분양대행사도 건설업을 등록할 예정이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자본금 5억원, 기술인력 5명 채용 등 건설업 등록 요건을 갖출 수 있는 대형 분양대행사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분양대행사들은 거센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건설업계와 분양대행업계는 청약시스템 개편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의 청약시스템에서는 주택 보유 및 청약당첨 사실을 숨기고 청약가점만 높게 기재하면 일단 당첨될 수 있다. 이런 물량이 부적격 처리되면 ‘떴다방’이 미계약 추첨을 통해 쓸어가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청약제도 자체에 구멍이 뚫려 있어 건설사가 청약업무를 관리하더라도 한계가 있다”며 “전산시스템 개발 등 시스템 개편은 외면한 채 민간업체에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분양대행업을 제도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 분양대행사 임원은 “정부가 장기적으로 분양대행업 업태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필요한 자격조건을 명시해 이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입장 단호

분양대행업체의 대행업무를 규제한 정부 입장은 단호하다. 청약과 관련된 중요한 업무는 자격을 갖춘 건설사가 책임지고 맡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윤언 국토부 주택기금과장은 “청약 자격을 확인하고 청약가점을 계산해 당첨자를 결정하는 중요한 업무를 아무런 면허도 없는 분양대행업체에 맡길 수는 없다”며 “청약과 관련된 부분은 사업주체인 건설사가 책임지거나 건설업 면허가 있는 업체가 대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자격자가 청약과 관련된 상담을 하고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당첨되는 시장의 혼선을 막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청약과 관련된 서류에 인적사항 등 중요한 개인정보가 담겨 있는 만큼 서류 보관도 자격을 갖춘 업체가 할 필요가 있다는 게 국토부의 입장이다. 황 과장은 “다만 청약과 상관없는 마케팅 및 홍보 등 단순 업무는 기존 업체에 맡겨도 무방하다”고 덧붙였다.

서기열/허란 기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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