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욜로, 그 다음엔 뭐가 있나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대구 남산동의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경내에는 역대 사제들이 묻힌 성직자 묘지가 있다. 평소 많은 신자가 찾아와 기도하고 묵상하는 곳이다. 묘지로 들어가는 문의 양쪽 기둥에는 ‘HODIE MIHI, CARS TIBI’라는 글이 쓰여 있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의 라틴어다. 죽음이 오늘은 나에게 왔지만 언젠가는 당신에게, 모든 이에게 닥칠 일이라는 얘기다. 누구라도 이 구절을 마주하면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현재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격언도 많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오직 현재에 충실하라.’ ‘황금보다 소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지금이다.’ 오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으랴.여행 붐 몰고 온 욜로 열풍

그래서일까. 현재를 강조하고 당장의 행복을 중시하는 풍조가 날로 확산하고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현재의 행복을 위해 시간과 돈을 우선 투자하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열풍이다. 내 집 마련, 노후 준비보다 당장의 삶의 질을 높여줄 취미생활, 자기계발 등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게 욜로족의 특징이다. 남보다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도 욜로 라이프의 차별점이다. 온라인 리서치 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펴낸 트렌드 전망서 《2018 대한민국 트렌드》에 따르면 먼 훗날의 행복보다 지금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자가 61.9%였다.

최근에는 물질적 소비를 통한 당장의 만족에서 개인의 경험을 확장하는 차원으로 욜로의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삶의 거창한 목표보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겠다는 ‘소확행(小確幸)’, 가성비 대신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을 따지는 ‘가심비(價心比)’,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life-balance)’이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런 트렌드의 대표적 사례가 여행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해외여행을 떠난 국민이 2409만 명에 달했다. 사상 최대다. 전년 동기 대비 18.2% 늘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확대된 점이 최대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1~10월 관광수지 적자는 111억408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2.7% 늘어났다. 이 또한 사상 최대다.

카르페 디엠, 현재에 충실하라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자.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면서 현재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누리는 게 정말 잘사는 길인가. 그날 벌어 그날 쓰면서 소소한 행복만 추구하면 언필칭(言必稱) ‘흙수저’ ‘헬조선’의 현실이 나아지는가. 통장이나 퇴직금 탈탈 털어 해외여행 갔다 오면 뭐가 남는가. 준비 없는 내일과 미래에도 오늘처럼 소소한 행복이 보장되는가.주변의 20~30대들이 하는 말은 꽤 충격적이다. “어차피 취직하기도 어렵고, 취직한다고 해도 턱없이 적은 월급을 몽땅 모은들 집을 사겠어요, 부자가 되겠어요? 그냥 현재 할 수 있는 선에서 즐기며 사는 거죠.” “퇴직금 받아서 유럽 여행 가려고요. 그 뒷일은 다녀와서 생각하면 되죠.”

욜로 열풍과 함께 널리 회자되는 말이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다. 흔히 ‘현재를 즐겨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뜻은 ‘오늘을 붙잡아라(seize the day)’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얘기다. 미래가 있는 욜로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너무 일찍 버킷리스트 지우기에만 골몰하면 ‘후회 목록’이 늘어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준비하면서도 현재 삶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중도적 지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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