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악몽, 피할 수 없는 죽음, 적막한 폐허 등은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며 오랜 세월 예술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뭉크의 ‘불안’ 등 어두운 분위기의 명화 150점을 엄선해 화가와 그림의 배경, 눈여겨볼 지점 등을 설명한다. 인간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돕는다. (박찬원 옮김, 미술문화, 240쪽, 3만3000원)
현대인들만큼 ‘재미있는 것’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도 없다. 인터넷 덕분이다. 밤새도록 읽고, 보고, 들어도 끝나지 않는 콘텐츠가 잔뜩 쌓여 있다. 그런데도 ‘인생이 즐겁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파워 오브 펀>의 저자 캐서린 프라이스도 그랬다. 어느 날 밤이었다. 언제나처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문득 눈을 뗐는데, 어린 딸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아기는 엄마를 올려다보고 있고, 엄마는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참한 기분이었다.”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임종을 맞을 때 평생 시간을 낭비했다는 기분을 느낄 것인지, 아니면 태양 아래에서 보낸 찬란한 순간을 떠올린 것인지.”왜 현대인들은 공허함 외로움 지루함 무력감에 시달릴까. 저자는 ‘가짜 재미’에 탐닉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짜 재미는 대개 수동적 소비에서 나온다. 멍하니 TV나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는 일 등이다. 코로나19 유행 전 미국 성인들은 평균 4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1년이면 거의 60일이다. 깨어 있는 시간의 4분의 1이나 된다. 태블릿과 TV, 비디오 게임기 등을 포함하면 이 시간은 더 늘어난다. 저자는 묻는다. “솔직히 취미 생활을 하거나 파트너, 가족, 친구 등과 직접 만나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는가?”‘살아 있는 기분’은 재미있고 즐겁게 살 때 나온다. 여기서 재미는 ‘진정한 재미’여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는 진정한 재미를 “장난기, 유대감, 몰입의 결합”이라고 정의한다. 수동적 소비와 반대되는 적극적인 행위이고 경험이다. 악기를 배우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자전거로 대륙 횡단 여행을 하는 일 등이다. 꼭 거창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된다. 저자는 ‘남편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한 뒤 차에 친구들을 가득 태우고 다 함께 ‘보헤미안 랩소디’를 목청껏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온 일’을 진정한 재미를 느꼈던 예로 들기도 한다.재미를 우선시한다는 게 꼭 한량처럼 논다는 뜻은 아니다. 일과 학업에도 도움이 된다. 창의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과학적 아이디어는 산책하거나 동료와 잡담을 나눌 때 떠오르곤 한다. 양자역학에 기여한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파동 방정식을 고안한 것도 스위스 알프스로 2주 반 동안 크리스마스 휴가를 갔을 때였다.2008년 한 연구진이 재즈 음악가들에게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안에 들어가도록 특별히 설계된 피아노를 연주하도록 했다. 즉흥 연주할 때의 뇌 활동은 음계 연주를 하거나 암기한 곡을 연주할 때와 확연히 달랐다. 우리가 쉰다는 명목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건 뇌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대로 쉬는 게 아니라고 책은 설명한다. 뇌를 피곤하게 하고, 쓸데없는 정보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할 뿐이다.책의 뒷부분은 진정한 재미를 느끼기 위한 일곱 가지 방법을 담았다. 그중 하나는 마음가짐이다. 여행이나 취미 등 여러 활동을 한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으면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에 집중해야 하고, 판단이나 자의식을 버려야 한다. 결과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재미가 찾아들 공간을 마련할 것도 권한다. 물리적으로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과 함께 정신적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시간과 관심을 예산이라고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뉴스나 이메일 확인 같은 중요하지 않은 활동은 집중력과 에너지를 떨어뜨린다. 특히 하루 중 가장 생산성이 높은 아침 시간엔 휴대폰과 인터넷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책 제목과 달리 재미가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재미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았는지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휴대폰을 비롯한 현대의 기술들이 어떻게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지,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저자가 2018년 미국에서 펴낸 <휴대폰과 헤어지는 법>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이 재미없다’고 느낀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여러 책과 연구 결과들이 논하고 있는 내용을 잘 정리했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인간만이 체계적인 ‘의례(儀禮)’를 가지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존재라고. 그러나 동물이 살아가는 세상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인간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 또한 일정한 법식을 가지고 견고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어서다.일례가 동료나 가족이 죽었을 때 동물이 보이는 태도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동물원에서는 발에 난 상처로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우두머리 암컷 코끼리를 안락사시킨 뒤 사체를 내놓았다. 그러자 죽은 코끼리와 가장 친했던 두 마리의 코끼리가 가까이 다가와 냄새를 맡고 만져보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이들은 이후에도 밤새 번갈아 가며 이 장소를 찾아와 죽은 코끼리 몸에 흙을 정성스레 뿌려 덮어줬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죽은 코끼리 몸에는 5㎜ 이상 두께의 흙이 쌓여 있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애도의 의례를 행한 것이다.물론 동물의 세계에서 의례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인사부터 구애, 선물, 놀이, 여행 등 다양한 형태의 의례가 그들의 삶 곳곳에 녹아 있다.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는 30년 이상 코끼리를 연구해온 동물학자 케이틀린 오코넬이 야생 동물이 행하는 10가지 의례를 조명하고, 그 의미를 분석한 책이다.저자는 건강한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선 인간에게도 의례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오늘날 사회는 깊이 분열돼 있다. 의례는 더 원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서로를 잘 보살핌으로써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열쇠”라며 “의례를 되찾는 순간 우리의 삶은 더욱 평화롭고 충만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수정 바늘이 모여 이뤄진 듯한 눈 결정의 정교한 형태는 교과서에서 보았던 현미경 사진과는 차원이 달랐다. 흐트러짐 없는 결정 모체, 날카로운 윤곽, 그 안에 박힌 다양한 꽃 모양, 그 어떤 탁한 색도 섞여들지 않은 완벽한 투명체인 눈 결정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눈은 하늘에서 보낸 편지>는 일본 물리학자 나카야 우키치로(1900~1962)의 수필집이다. 그는 홋카이도대 교수로 부임하고 나서 난생처음 현미경으로 본 눈 결정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평생을 눈 연구에 매진했고, 3000여 장의 눈 결정 사진을 찍었다. 1936년엔 세계 최초 실험실에서 인공 눈을 만들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눈은 매우 낮은 온도에서 수증기가 응결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는 차갑게 얼린 동판 위에 수증기를 불어넣었다. 만들어진 건 눈이 아니라 얼음 결정이었다. 다음에 그는 차가운 동판을 수증기 위에 놓았다. 증발한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대류 현상을 모방했다. 반쪽짜리 눈 결정이 생겼다. 자연에서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하늘에는 동판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저온 실험실을 마련했다. 최초의 인공 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눈 결정 연구는 무척 재미있지만 지독하게 춥다는 게 단점이다. 8월의 무더위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겐 부러움을 살 수 있지만 사실상 그렇게 쉬운 실험은 아니다.”이 책은 눈에 관한 과학적 지식보다는 한 개인의 담담한 일상과 감상을 담았다.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거나 교훈을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묘한 매력이 있다. 수필이란 이렇게 써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