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된 문장…푸른 바다 수놓다
이른 더위가 찾아온 요즘, 중견 작가 김25(본명 김유미·59)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회현동 금산갤러리는 때아닌 피서객들로 북적였다.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바다, 해변으로 밀려와 발목을 간지럽히는 잔물결 등 파도 그림을 보러 찾아온 이들 때문이다.

청량한 기운에 이끌리듯 그림에 다가간 관람객들은 작품을 ‘읽기 위해’ 한참 그 앞에 서 있는다. 파도 거품인 줄 알았던 희고 푸른 형상이 사실 책이나 기사에서 옮겨 적은 알파벳들로 이뤄져 있어서다.

김 작가의 이번 전시 제목은 ‘필연적 조우’. 회화와 글, 추상과 구상 등 여러 요소를 한 작품에 조화시켰다는 뜻을 담았다. 김 작가는 “2년 전 어느 날 해 질 무렵 차창 밖 풍경이 글씨로 보이는 경험을 했다”며 “그 후 글자의 아름다움과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을 조화시키는 작품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는 바다 풍경을 그린 작품 2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신작인 ‘Wave Sorry’(사진) 연작은 바다의 아름다움과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동시에 전달하는 작품이다. 파도를 구성하는 글자들은 해양 환경오염을 다룬 외신 기사. 작품 제목을 통해 ‘파도 소리’와 ‘파도야 미안해’를 중의적으로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과 아르튀르 랭보의 시 등 문학 작품에서 따온 명문(名文)으로 파도를 표현한 작품들도 걸렸다.

김 작가의 작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다. 지난해 미국 뉴욕의 미즈마&킵스갤러리에서 연 전시가 큰 호평을 받은 데 이어 지난 3월 두바이에서 열린 두바이아트페어에서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금산갤러리 관계자는 “중동에서는 김 작가의 작품 중 밝고 선명한 그림이 인기가 많다”며 “두바이의 한 공주가 김 작가 그림을 사가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미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로버트 크루시오는 전시 평론을 통해 “김 작가는 생동감 있는 바다 풍경을 통해 섬세한 내면을 표현한다. 이는 인간의 욕망과 나약함을 효과적으로 상기시킨다”고 했다. 전시는 6월 2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