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지동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반추-반추상’전에 전시된 박성환의 1979년작 ‘농무’.
서울 홍지동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반추-반추상’전에 전시된 박성환의 1979년작 ‘농무’.
2001년 세상을 떠난 사실주의 화풍의 대가 김인승은 일본 도쿄미술학교에서 유화를 공부한 뒤 귀국해 1937년 제16회 선전(鮮展)에서 ‘나부(裸婦)’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다. 해방 후에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과 예술원 회원을 지냈고, 3·1문화상(1968), 문화훈장동백장(1969)을 받았다. 2004년 별세한 홍종명도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회장을 비롯해 문예진흥원 심의위원장, 숭의여자전문대학장을 지내며 한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김인승과 홍종명을 비롯해 1999~2004년 작고한 미술인 40명을 재조명하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홍지동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오는 9월 30일까지 작고 미술인 회고 및 정리를 목적으로 펼치는 ‘반추(反芻)-반추상’전이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그동안 일반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거나, 최근 10년간 비영리 미술기관에서 유작전이 열리지 않은 작가를 선별했다. 한국화(나상목 박세원)를 비롯해 서양화(김상유 김인승 박성환 변종하 장발 조병덕 홍종명), 조각(김광진 배형식 전상범), 사진(정도선), 예술철학(조요한), 미술사학(김종태 김희대) 등 시각예술 분야에서 발자취를 남긴 작가들의 열정을 조명한다.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화집, 팸플릿, 사진 등 200여 점을 다채롭게 내보인다.

전시장에는 작고 작가들의 숨은 열정과 남달랐던 예술혼이 가득하다. 나상목이 1943년 미술 독학 일정을 작성한 ‘드로잉북’은 치열한 삶의 흔적을 보여준다. 풍경, 인물, 동식물 등을 화첩에 세세하게 기록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 작가의 숨결과 도전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박성환의 1979년작 그림 ‘농무’도 나와 있다. 형형색색의 색채와 붓질로 풍년을 기원하며 농악을 즐기는 농촌 사람들의 모습을 활달하게 잡아냈다. 1919년 황해 해주에서 태어난 박성환은 일본 도쿄문화학원 미술부를 졸업한 뒤 해주미술학교를 설립해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홍종명의 첫 개인전 방명록(1958)과 1991년 작 ‘과수원집 딸’, 변종하의 월간 잡지 ‘신태양’ 표지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장을 지낸 김희대의 육필원고 ‘일본 근대 서양화단의 성립과정’ 등도 눈에 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김달진 박물관장은 “미술가들의 경우 대부분 작고 후 15~20년이 흐르면서 작품과 자료, 관련 기억이 대부분 유실됐다”며 “한국 근·현대미술사 연구에서 잊혀가는 작가들의 기초 자료를 제공해 창작자와 연구자, 일반인들에게 삶에 대한 통찰과 예술적 영감을 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그동안 한국미술에 대한 거시적 시각을 연구자와 일반인들에게 제공하고자 한국미술 해외 진출, 외국미술 국내 전시, 공모전, 미술교과서, 미술단체, 전시공간, 한국화, 추상화, 미술평론 등의 주제어를 중심으로 미술사 서술을 해왔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