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대표 "화가 꿈꾸던 회계사…미술품 시장 '큰손' 됐죠"
화가를 꿈꿨던 회계사는 국내 최대 미술품 공동구매 스타트업의 대표가 됐고, 미술품 시장의 국내 최대 ‘큰손’으로 부상했다.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를 운영하는 열매컴퍼니의 김재욱 대표(사진) 얘기다. 열매컴퍼니가 올해 사들인 미술품은 500억원어치로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국내 미술품 거래시장(2차 화랑 시장)의 10%를 차지하는 규모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 열매컴퍼니 갤러리에서 만난 김 대표는 “조각투자의 열기가 꺾였다고 하지만 미술품 투자 시장에서 개인들의 관심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며 “다른 조각투자 플랫폼이 거래 수수료를 받는 방식인 데 비해 우리는 좋은 작품을 찾아 개인들과 같이 투자하고 매각 차익을 공유하는 형태여서 호응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열매컴퍼니는 미술품을 직접 매입한 뒤 아트앤가이드를 통해 개인에게 재판매하는 형식이다. 재판매할 때 열매컴퍼니도 참여한다. 이후 그림을 처분해 얻은 이익을 배분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열매컴퍼니가 1000만원을 주고 그림 한 점을 사 온 뒤 10%의 이익을 붙여 아트앤가이드에서 1100만원에 공동구매를 진행한다면 950만원어치는 고객이 사고, 150만원어치는 열매컴퍼니가 구입한다. 이렇게 공동 소유했다가 그림의 가치가 오르면 이를 팔아 차익을 나눈다.

열매컴퍼니는 미술 투자 시장에 상당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화랑시장은 작가를 발굴해 처음 전시회를 여는 1차 화랑과 이후 매매를 연결하는 2차 화랑으로 나뉜다. 열매컴퍼니는 2차 화랑 시장의 최대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열매컴퍼니가 연간 매입한 그림은 2020년 30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200억원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500억원을 넘어섰다.

주요 고객은 금융권 종사자들이다. 김 대표는 “주식거래 제약이 있는 펀드매니저나 연기금 임원들이 공동구매에 많이 참여한다”며 “초기 매입부터 재매각까지 3~10개월이 소요돼 한 작품을 수년간 보유했다가 파는 일반 화랑보다 수익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열매컴퍼니는 현재까지 100점가량의 그림을 재매각했다. 고객에게 돌아간 수익은 작품당 30% 수준이다.

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화가를 꿈꿨다. 부모님의 만류로 서울대 경영학부에 진학해 회계사가 됐지만, 마음은 화랑에 있었다. 회계사 2년 차 때 ‘아트펀드’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그길로 외국계 투자은행 ENP벨스타로 옮겼다. 2년 가까이 선박 등 대체투자 펀드를 운용하며 금융을 배웠다.

다음은 미술이었다. 그는 펀드매니저를 그만두고 간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월급은 4분의 1토막 났지만, 김 대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3년간 미술품 전시, 저작권, 거래 등 미술 분야를 섭렵했다. 오랜 준비 끝에 2018년 10월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를 시작했다.

열매컴퍼니의 다음 목표는 증권형 상품 출시다. 지난 6월 업계 최초로 금융위원회에 혁신금융서비스를 신청했다. 미술품 기반 개인 간 거래(P2P), 미술품 담보대출 등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2024년에는 기업공개(IPO)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글=허란 기자/사진=허문찬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