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을 제치고 7년 만에 국가별 수주 1위를 탈환한 한국 조선업계에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1분기(1~3월) 중국에 선박 수주 1위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사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가 줄어든 탓이다. 중국 정부가 자국 조선사에 일감을 몰아준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45% 대 28%…다시 중국에 밀린 韓 조선
9일 조선·해운 시황 분석 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 1분기 중국은 세계에서 발주된 선박 573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196척) 중 절반에 가까운 258만CGT(106척·점유율 45%)를 수주했다. 한국은 162만CGT(35척·28%)로 2위로 밀렸다. 3위는 78만CGT(10척·14%)를 기록한 이탈리아였다.

지난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가 싹쓸이하다시피 한 LNG 운반선 발주가 줄어든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올 1분기 대형(15만㎥ 이상) LNG 운반선은 13척이 발주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9척)보다 31.5%(6척) 감소했다. 대형 LNG 운반선 1척이 8만6000CGT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51만CGT가량의 일감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엔 LNG 운반선 19척을 모두 국내 조선 3사가 수주했지만 올 들어서는 13척 중 2척을 중국 조선사인 후둥중화에 빼앗겼다.

지난 3월 한 달만 놓고 보면 더 우울하다. 중국은 지난달 세계에서 발주된 선박 231만CGT 중 절반을 웃도는 127만CGT(37척·55%)를 수주했다. 1만5000TEU급(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컨테이너선 10척을 한꺼번에 수주한 덕분이다. 프랑스 등 유럽 선사들이 중국 최대 조선사인 중국선박공업그룹(CSSC)과 후둥중화, 장난조선 등에 발주한 물량이다.

조선업계에선 중국 은행들이 ‘수주절벽’에 시달리고 있는 자국 조선사를 지원하기 위해 무이자로 선박 발주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36만CGT(13척·16%)를 수주하는 데 그쳐 46만CGT를 따낸 이탈리아(3척·20%)에도 밀린 3위에 그쳤다.

수주 부진 여파로 남은 일감(수주 잔량)도 중국에 뒤졌다. 1분기 말 기준 국가별 선박 수주 잔량은 중국이 2992만CGT(37%)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2133만CGT·26%)과 일본(1418만CGT·18%)이 뒤를 이었다. 중국은 남은 일감이 지난 2월보다 62만CGT 늘어난 반면 한국은 27만CGT 줄었다.

해운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신(新)조선가(새로 제작하는 선박 가격)는 변동이 없었다. 지난달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2월과 같은 131이었다. 선종별로는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9300만달러, 컨테이너선(1만3000~1만4000TEU) 1억1500만달러, LNG 운반선 1억8500만달러로 전달에 비해 가격 변동이 없었다.

한국 조선업계는 이달부터 본격화하는 LNG 운반선 발주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 자원개발업체인 애너다코페트롤리엄은 아프리카 LNG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할 16척가량의 LNG선 발주를 준비하고 있다. 최대 15척의 쇄빙 LNG선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러시아 북극해 ‘야말 프로젝트’ 2차 발주도 기대를 모은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